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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49, 산지 기행

작성자 커피 리브레(ip:)

작성일 2022-10-18 13:3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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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MONTHLY LIBRE

November 2022 







ISSUE #49

 산지 기행문







Voice of Origins



커피 농부와 고객을 이어주는 일. 커피 산지와 수 년간 다이렉트 트레이드를 해온 커피 리브레가 무엇보다 공을 들인 일이기도 한데요. 이러한 마음의 발로로 8년 전, 커피 리브레는 세계 각국에 있는 커피 농장주들을 초청해 산지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려드리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그때 기획했던 세미나 이름이 바로 “Voice of Origins”! 지금도 그 마음을 이어가고자 매월 한 곳의 산지를 조명하고, 해당 커피를 에스프레소 메뉴로 즐길 수 있도록 <VoO> 프로젝트를 진행해오고 있습니다. 이번 호에는 코로나 기간 동안 방문하지 못했던 농장을 찾아 산지의 목소리를 담아보았습니다. 커피 리브레 수장의 산지 기행문! 단풍만큼 마음을 설레게 할, ‘커피의 얼굴들’을 만나보세요!





페루



새벽 3시 페루 리마 공항은 제법 차가운 바람이 불고 황량했다. 터벅터벅 근처 호텔로 걸어가 잠시 눈을 붙였다. 아침 8시에는 친구 사이먼을 만나 한창 커피를 수확하고 있는 북부의 하엔으로 떠나기로 했다. 사이먼을 처음 만난 것은 7년 전 니카라과에서였다. 영국 요크가 고향인데 바리스타로 일하다가 생두 회사로 막 이직했을 때다. 

그는 선한 인상에 수줍은 미소를 하고 있었는데 얼마 후 페루로 가서 고생하며 자리를 잡았다. 사이먼은 그새 페루 여자 친구와 6개월 된 딸이 생겼다. 사이먼 가족이 앞으로 우리의 페루 커피를 책임져 줄 것이다. 나는 열심히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페루는 한국의 12배에 달하는 광활한 영토에 남북으로 뻗은 안데스산맥 곳곳에서 커피를 재배하고 있다. 이런 산악지형에서는 미시기후가 발달해서 동네마다 뚜렷한 향미 차이를 기대할 수 있다. 특히 페루에는 2000미터가 넘는 재배 고도를 가진 농장이 많고 게이샤를 비롯한 좋은 품종들이 빠르게 퍼져 나가고 있어 잠재력이 뛰어나다. 이번에 맛본 몇몇 게이샤 샘플은 파나마 게이샤 최상급 수준이었다. 페루가 가진 또 하나의 매력은 전통적인 수세식으로 가공한 깨끗하고 밝은 커피가 많다는 점이다. 

페루의 커피 농가는 아직 설비와 비료 사용, 영농 기술, 사회적 인프라가 충분하지 않지만 내가 만난 생산자들은 모두 더 나은 품질의 커피를 생산하기 위한 열정과 확신이 넘쳤다. 천혜의 자연환경과 생산자의 열정은 부족함을 넘어설 힘이다. 여러모로 페루는 축복받은 땅이 분명해 보였다.





콜롬비아


콜롬비아는 브라질 다음으로 많은 아라비카 커피를 생산하는 국가이자 가성비 좋은 커피로 많은 로스터에게 사랑받는 산지다. 하지만 작년부터 라니냐가 심해져 과도한 비가 내리고 흐린 날씨가 이어지면서 생산량이 급감했다. 결국 올해는 2014년 이후 가장 적은 수확량을 기록했다. 막상 방문해 보니 생각보다 상황은 더 좋지 않았다. 

비가 내릴 때가 아닌데도 매일 오후 비가 내렸다. 생산자들은 커피 열매가 비에 떨어지고 수확한 커피를 제대로 말릴 수 없어서 근심이 많다. 

다른 한편, 공급 부족에 대한 우려로 현지 거래 가격이 치솟으면서 로스터가 지불해야하는 생두 가격은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얼핏 생산자에게는 유리한 상황 같아 보이지만, 비료 가격은 작년의 두배가 넘게 올랐고 인건비와 운송비 등의 생산 비용도 함께 폭등해 생산자도 시름이 깊다. 이런 상황에서 생산자와 수출업체, 로스터 모두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허탈해할 뿐이다. 그런데도 카우카에서 만난 한 생산자는 다음 수확은 기대할 만하다며 엄지를 치켜드는데 농담인가 싶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건 오랜 시련과 좌절로 인한 학습된 무기력 같은 것일까, 어두울수록 빛을 발하는 희망의 힘일까 도저히 알 수 없었다. 나도 일단 엄지를 들어 그를 응원하기로 한다.





니카라과


핀카 리브레를 운영한 지도 벌써 7년 차다. 처음부터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그 이상이다. 원래 작년과 올해는 꽤 많은 수확을 예상했는데, 작년에는 연이은 허리케인으로, 올해는 수확 시기에 내린 많은 비로 수확량이 급감했다. 결국 핀카 리브레는 두 해 연속 적자를 면치 못했다. 그래도 오랜만에 농장을 방문하니 마냥 좋았다. 커피밭에는 내년 봄부터 수확할 초록색 커피 체리들이 한창 자라고 있었다. 게이샤와 SL28&34, 핑크 부르봉, 시드라, 자바, 파카마라, 파라이네마, 에티오피아 품종의 나무들이 건강하게 자라는 모습은 모니터 앞에서의 온갖 시름을 잊게 했다. 이 글이 인쇄될 때쯤이면 얼마 전 부산항에 들어온 핀카 리브레 커피가 통관을 마치고 판매를 시작했을 것 같다. 초대형 허리케인과 이상 기후를 이겨낸 커피는 어떤 맛일까, 우리에게 어떤 희망을 보여줄까 궁금하다.





에필로그


팬데믹 초반에 산지로 떠났다가 과테말라에서 국경이 폐쇄되는 바람에 50일의 유배 생활을 하다 돌아온 지도 2년 반이 지났다. 10년 이상을 매년 방문하던 산지에 오랜만에 가려니 낯설고 설렜다. 파트너와 생산자를 만나면 서로 죽을 고비라도 넘긴 사람들처럼 손을 맞잡고 안부를 물었다. 코로나에 몇 번씩 걸렸다며 웃으며 말하는데 나는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몇 번을 머뭇거렸다. 코로나도, 이상 기후도 전 세계적인 현상이지만 짊어진 무게는 각기 다른 것 같다.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노력해야 가능한 일이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준비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내 몫의 책임감도 필요한 일인 것 같다. 커피를 좋아한다는 말이 점점 어렵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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