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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58, 커피와 스트레스

작성자 커피 리브레(ip:)

작성일 2023-07-24 11: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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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MONTHLY LIBRE

August 2023





ISSUE #58

커피와 스트레스







커피와 스트레스



관련 연구를 들여다보지 않아도. 현대인이라면 마음에 화가 가득한 날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 주는 진정 효과를 체득할 수밖에 없다. 아·아 세 잔이면 퇴사를 면한다. 내가 커피 회사에 취직해 서글픈 점이라면 직장 스트레스를 넉넉히 풀어주던 커피 한 잔이 더 큰 스트레스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이번엔 또 무슨 커피 얘기를 쓴단 말이야. 내 머리는 고갈된 지 이미 오래.

커피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게 어디 나뿐일까. 경영지원팀은 환율이 올라서, 생두팀은 생두 재고가 간당거려서, 로스팅팀은 커피가 안 볶여서, Q/C팀은 그 맛이 그 맛이 아니라서 스트레스 받는다. 그러니까 가끔 리브레는 콩이 드글드글 볶이는 로스터기 한가운데 같다. 





꿈결로, 나이트호크를 타고.



커피를 ‘한다’는 말은 커피를 볶거나 내린다는 말보다 서류를 주고받는다는 말에 더 가깝다. 리브레 직원 역시 커피 자체에 대한 스트레스보다 서류에 대한 스트레스가 많다. A는 리브레 사원 중 누구보다 ‘커피하기’에 가까운 사람이다. A 없이는 해외에서 몰려오는 생두 서류를 진두지휘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그녀의 스트레스는 산지에서 서류를 작성하기 위한 정보를 제때 알려주지 않을 때, 산지에서 서류를 잘못 썼을 때 온다. 

B는 눈이 빠져라 표기사항을 본다. 식품 판매를 위해선 패키지에 정확하게 기재해야 하는 정보들이 있다. 매번 재확인하고, 검수도 요청하지만 오타가 하나씩 튀어나올 땐 한숨 한번 쉬고 다시 작업하는 것 말곤 답이 없다.

C는 이 일들을 ‘하고 싶은 일을 위해 해야만 하는 하기 싫은 일’이라 잘라 말한다. 창업 전에는 5:5쯤 될 줄 알았던, 하고 싶은 일과 하기 싫은 일의 비율이 창업 후엔 1:9쯤으로 뒤바뀌었다.

꿈나라로 도망치는 건 현실을 잊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리브레가 디카페인 블렌드를 출시한 후로는 해가 진 후에도 커피를 마실 수 있어 다행이다. 그렇게 나이트호크와 함께 깊은 잠으로 도망치고 나면 내내 입에 맴돌던 쓴맛은 가시고 칠흑 같은 단맛이 감돈다.





자꾸 혼잣말이 들린다.



리브레에는 매일 아침 점심으로 커피를 내려주는 커피 요정이 산다. 사무실 서열 6위의 D다. (본인 주장으로는 서열 꼴찌에 가깝다.) 커피 회사에서 커피를 내려주는 것만큼 부담스러운 일이 없다. 커피가 맘 같지 않은 날엔 서열 2위의 ‘커피를 와 이렇게 내리노?’ 하는 말이 가슴을 푹 찌른다. 커피가 잘 팔려 주전자가 금방 동난 날엔 막내 사원의 조금 큰 혼잣말이 회사를 채운다. “커피가 없어서 큰일이네… 일을 못하겠다…”, 어쩌다 커피를 좀 흘린 날엔 “뒷손 없고로…” 하는 타박이 보너스다.

다 농담이고 일하면서 크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며 급히 수습한 D는 모든 일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고 믿는 사람이다. 이 자리를 빌려 조금 크게 혼잣말을 한다. 커피 늘 맛있게, 감사하게 잘 마시고 있다고. 그런데 오늘도 커피가 다 팔려서 일을 못하겠다고.





심장이 조여와요.



본인 이야기를 하자면 야심 차게 준비한 글을 쓸 수 없게 됐을 때 큰 내상을 입는다. 사실 이번 월간 리브레도 큰 내상을 입고 마지막 남은 정신을 그러모아 쓰고 있다. 월간 리브레는 나만 쓴다고 출간할 수 있는 콘텐츠가 아니라서, 갑자기 글을 다시 써야 할 때면 이 우주에서 내가 리브레에 취직해 커피 일을 하고 있는 이유는 뭔지부터 돌아보게 된다. 

이쯤 되면 왜 이번 호 주제가 커피와 스트레스인지 눈치채신 분. 맞다. 아이템이 킬되고 나서 대표님께 “이번 호 주제는 스트레스입니다. 오늘만큼은 이 주제만큼 잘 쓸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습니다.” 하고 질러버렸다.

모든 일이 끝나야 스트레스도 함께 날아가는 나는 여전히 스트레스 ING 중. 이번 호, 잘 마감할 수… 있겠지?... 대표님… 건방진 직원에게… 관용… 베풀어 주시겠지? 하는 뒤늦은 걱정은 보너스.





작고 귀여운 것들



이 밖에 리브레 직원들이 받는 스트레스에는 산지에 커피 대금을 치를 때마다 귀신같이 오르는 환율. 유선 상담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고객의 고충. 우리 커피 참 좋은데, 차암 좋은데 뭐라 팔 길이 없다는 정석적인 답변도 있다. 고양이 사진을 보고, 운동을 하고, 도전 욕구를 불태우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떨쳐내지만 쉽지 않다.

이 뜨끈뜨끈한 스트레스를 모아 놓으니 어쩐지 귀엽게만 느껴진다. 웃고 떠들고 화내고 엉엉 울 때가 가장 좋은 때라는 어르신의 말씀이 스치는 듯도 하다. 이 작고 귀여운 스트레스가 우리를 너무 해치지 않길. 그리고 우리를 지켜내는 꿀맛 같은 잠과 고요히 흐르는 시간이 오늘도 찾아오길. 나는 오늘 월간 리브레를 마감하고, 달콤한 나이트호크를 마시며 이 시간을 마무리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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