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리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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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59, Geisha Paradox

작성자 커피 리브레(ip:)

작성일 2023-08-25 11:5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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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MONTHLY LIBRE

September 2023





ISSUE #59

Geisha Paradox







상한 커피



처음 리브레에 입사했을 때를 떠올립니다. 나는 하루에 커피를 8잔도 마시는 커피 애호가라며,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았죠. 그 호기로움은 입사 첫날 대표님이 내려준 파나마 게이샤 한 잔에 무너졌으니. ‘커피가 왜 신데… 상한 거 아니냐고…’. 파나마 게이샤, 그 참을 수 없는 상큼함에 대표님 앞에서 오만상을 찌푸린 신입사원이 바로 접니다. 어느덧 커피 회사 2년 차가 됐습니다. 거북목이 조금 더 심해졌고, 산미 있는 커피를 마셔도 미간 하나 꿈쩍 않게 됐습니다. 저절로 겸손해졌던 날들입니다. 커피 하는 사람들이 60kg 생두포대를 번쩍번쩍 든다는 걸 알게 된 후로는 정말이지 급속도로 겸손해졌습니다. 모르는 만큼 용감해지고, 아는 만큼 겁쟁이가 됩니다. 지금 파나마 게이샤를 다시 마신다면. 설사 그 커피가 여전히 제 입엔 너무 상큼하더라도 그때처럼 오만상 찌푸리진 못하겠지요. 이 커피가 손꼽히게 비싼 커피, 남들이 다 맛있다는 커피, 누구는 신의 얼굴도 봤다는 커피란 걸 알게 됐으니까요. 이번 달엔 그 파나마 게이샤 중에서도 이름 좀 날리는 게이샤를 모아봤습니다. 모르는 만큼만 용감해져 봤습니다. 용기 내서. 너 뭔데, 뭔데 이렇게 비싼데, 너 좀 하냐? 고. 일단 질러봤으니 2년 차의 용감함, 즐겁게 읽어주신다면 더 바랄 게 없습니다.





Supa Dupa Geisha



또 하나의 창피한 기억을 꺼내봅니다. 대표님 커피 마시고 인상 찌푸렸단 얘기도 했는데 제가 더 부끄러울 게 뭐가 있습니까. 저는 처음에 게이샤가 일본의 게이샤인 줄 알았습니다. 하고 많은 이름 중에 왜 게이샤야? 하고 신경이 좀 긁혔던 게, 저뿐만은 아니라고 믿습니다. 당신이 저와 같다면. 사실 에티오피아 게샤(Gesha) 숲에서 유래한 이름입니다. 그 게이샤가 아닙니다. 그런데 이 게이샤가 그 게이샤와 아주 관계가 없다!고 말할 순 없습니다. 게이샤가 채취된 1930년대는 에티오피아 지명이 영어로 번역되기 전이라, 게이샤를 채취하던 연구원들이 임의로 영어 스펠링을 작성했는데요. 일본의 게이샤라는 단어에 익숙한 나머지 철자를 ‘Gesha’가 아닌 ‘Geisha’로 쓰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도 있답니다. 오늘날 커피 업계에선 Gesha와 Geisha를 두루 씁니다. 게샤, 게이샤, 아무튼 그 품종은 1950~60년대 중미에 도착했는데, 파나마에서 게이샤를 기르게 된 것도 이 시기입니다. 라 에스메랄다도 이때 게이샤를 보급받았는데 게이샤의 가치를 알아본 건 시간이 한참 지난 2004년의 일. 그 유명한 ‘God in a Cup(커피에서 신의 얼굴을 보았다)’는 베스트 오브 파나마 심사위원의 말에 게이샤는 단숨에 조명받게 됐고 그렇게 슈퍼스타의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리브레는 왜



파나마 게이샤는 8년 전 처음 들여왔습니다. 조금 늦은 편입니다. 이미 다양한 업체에서 파나마 게이샤를 선보이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선보이기엔 너무 비싼 커피라고 생각했습니다. 다행히 많은 분들께 사랑받아서, 카르멘, 아우로마르, 하트만 세 농장과는 아직도 거래를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세 농장의 큰 손이라고도 자부합니다. 생두 창고에 있는 것이라곤 그제 들어온 파나마 게이샤밖에 없는 덕에, 비싼 콩으로 남들이 안 하는 시도도 많이 해봤습니다. 대표적인 게 게이샤로 강배전하기. 파나마 게이샤의 강점은 플로럴함, 화사함, 쥬시함이라고들 하는데, 강배전을 하면 이런 강점을 많이 잃게 되죠. 대신 강배전만 줄 수 있는 매력을 커피에 담게 됩니다. 묵직한 바디감에 초콜레티한 느낌을 어느 누가 파나마 게이샤에서 기대했을까요, 이런 커피도 체험해보시길 바라며 볶았습니다. 그밖에 고생은 우리가 할게요, 고객님은 편하게 드시라며 만든 파나마 게이샤 드립백, 파나마 게이샤 캡슐커피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파나마 게이샤야 생두로 팔아도 원두로 팔아도 많은 분들이 사랑해주시지만 맛있는 커피, 쉽게 드시면 더 좋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리브레 마케팅팀엔 파나마 게이샤 간편 제품으로 떼돈벌어 파나마 게이샤 나초까지 출시하고 말겠다는 전운이 감돌고 있습니다. 싸움은 저희가 할게요, 고객님들은 편하게 드셔주세요.





게이샤의 역설 : 게이샤 사세요, 아니 사지 마세요. 아니 사세요.



우리가 게이샤를 바라보는 시선은 꽤 복잡합니다. 검증받은 파나마 게이샤는 물론 탁월합니다. 올해 리브레 수장이 최고점을 준 커피도 파나마 게이샤입니다. 그런데 맛과 가격의 레벨이 일치하냐, 하면 그건 또 아닙니다. 다른 지역 커피의 10배, 20배 가격을 지불할 만큼 탁월한가, 하면 그 가격에 그만큼 좋았던 다른 커피들도 머리를 스칩니다. 그래도 아쉬운 쪽은 언제나 바이어입니다. 농장에서 매년 생두 가격을 별 이유 없이 올려도 구매해 줄 바이어가 많습니다. 중국 회사들은 농장을 통째로 구매하곤 합니다. 이만큼의 게이샤를 주겠노라 약속해 놓고 더 많은 값을 지불하는 바이어에게 게이샤를 판매해버리는 농장도 있습니다. 커피는 희소하고, 구매할 사람은 넘쳐나다 보니 벌어지는 일들입니다.

비싸서 더 비싸지고, 구하기 어려워서 더 구하기 어려워집니다. 치솟는 가격이 멈출 줄 모르는 질주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비싼 커피 많이 팔면 물론 좋겠지만 이 경쟁에서 한발 물러서서, 다른 커피도 있다고 귀뜸드리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온두라스 커피는 맑고 화사한 느낌이 탁월합니다. 페루 게이샤도 파나마 게이샤와 견줄 만하고, 인도 커피에선 게이샤와는 전혀 다른 스파이시함이 감돕니다. 그러니까 파나마 게이샤가 아니라도 괜찮습니다. 이게 아닌가, 내가 무슨 말을. 아닙니다 여러분 파나마 게이샤 사세요. 비싸게 사 온 커피입니다. 파나마 하세요, 여러분. 게이샤 하세요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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