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리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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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63, 어디서 왔을까

작성자 커피 리브레(ip:)

작성일 2023-12-21 13:5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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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MONTHLY LIBRE

January 2024





ISSUE #63

어디서 왔을까.







The Origin of Love




정말이지 세상에 존재하는 무엇이든 시작이 있습니다. 우주는 폭발로부터 생겨났고, 커피는 고대 에티오피아의 춤추는 염소로부터 역사가 시작됐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이 저마다 역사가 있습니다. 책상 위에 놓여있는 핸드크림과 머그잔, 모니터와 이어폰에도 시작이 있고, 그 이야기는 제법 흥미롭습니다.

어디에서 왔는가, 어디에 있나. 또 어디로 가는가. 사람들은 끊임없이 그 행로를 그려보아서, 출발지를 알기 어려운 대상엔 이야기를 붙여주기도 합니다. 그중 제가 좋아하는 건 사랑의 기원에 관한 이야깁니다. 먼 옛날 인간들은 각각 네 개의 눈과 귀, 팔과 다리를 가졌는데, 인간이 신을 넘어설 것을 두려워한 신이 인간을 반으로 갈라놓았다나요. 그렇게 반으로 쪼개진 인간들이 서로를 찾아 나서는데, 그게 바로 사랑의 시작이라고요. 그러니까 인간은 어디에서 왔든, 어디에 있든, 모두가 사랑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인 거죠.

어디로든 향하기 좋은 1월. 이번호는 시작에 관한 이야기 몇 가지를 모아봤습니다. 춤추는 염소와, 가금나무 뿌리로 만든 가짜 커피와, 철저하게 망한 첫 에스프레소 머신이 만든 이야기를 즐겁게 읽어주세요.





목동과 춤추는 염소



커피가 어떻게 시작됐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에티오피아의 목동과 춤추는 염소 이야기가 유명합니다. 전해지는 이야기가 모두 달라 제가 알고 있는 이야기로 소개해 드립니다.

먼 옛날 에티오피아에 목동 칼디가 살았습니다. 매일 염소를 이끌고 산에 오르던 칼디는 어느 날 앞발을 들고 춤추는 염소를 목격했습니다. 염소를 살피던 칼디는 이내 염소들이 정체 모를 빨간 열매를 먹고 흥분했음을 알아차렸죠. 열매의 정체가 궁금해진 칼디 역시 그 열매를 씹어 삼켰습니다. 그러자 왠지 모르게 기운이 솟으며 잠이 깨는 게 아니겠어요.

선량한 신자였던 칼디는 이 사실을 마을의 수도사들에게 알렸습니다. 몇몇 수도사들은 밤샘 기도를 할 때 이 열매를 애용했지만, 몇몇 수도사들은 이 열매는 악마의 열매라며 불에 던져버렸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열매는 불에 탈수록 신비한 향기를 내뿜어, 이 향기에 매료된 이들이 탄 열매로 음료를 내리기에 이르렀습니다. 바로 이 음료가 오늘날 커피의 기원이라는 이야기입니다.






Welcome to Korea



한국에 커피가 들어온 건 1861년 철종 대입니다. 당시 한국에서 몰래 선교 중이던 프랑스 신부 베르뇌가, 마카오에 있던 또 다른 신부 리브아에게 커피를 주문한 게 그 시작인데요. 주문을 받은 리브아 신부가 이듬해 한국에 입국하며 커피와 흑설탕을 들고 왔다고 합니다. 이것이 기록으로 남아있는 조선 최초의 커피이고요.

초기 서양에서 온 사람들을 중심으로 소비되던 커피는, 황실과 귀족을 중심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고종황제 역시 소문난 커피 애호가였습니다. 황제가 즐겨 마시던 음료였으니 커피는 당연히 고-급 음료였지만 일반인이 손도 못 댈 정도로 비싼 음료는 아니라서, 당시 이름난 호텔에서도 커피를 마실 수 있었습니다.

재미있는 건 ‘가짜 커피’도 종종 있었다는 건데요. 동아일보에서는 가금나무 뿌리, 콩, 나뭇잎 껍질 같은 것을 가루로 만들어 커피로 파는 사례를 소개하면서, 가짜 커피를 가려내는 방법으로 커피 가루를 물에 넣어 커피가 가볍게 떠오르는지 확인하라는 글을 덧붙였습니다. 가볍게 떠올라야 좋은 커피라고요.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한국전쟁이 발발한 격동의 20세기에도 한국의 커피는 오래오래 살아남아 이제는 커피 소비로는 손꼽히는 나라가 되었으니. 가금나무 뿌리 커피를 사발에 저어 마셨던 어느 무렵과는 비교도 할 수 없게 달라졌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스 아메리카노 없이 저는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태동을 보자면 먼저 에스프레소 머신의 개발기부터 보아야 합니다. 최초의 에스프레소 머신을 개발한 인물은 이탈리아 토리노의 안젤로 모리온도입니다. 초창기 머신은 대량 추출을 염두에 둔 것이어서 일반 손님을 맞기도 어려웠고, 마케팅적으로도 처참히 실패해서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에스프레소 머신은 이후로도 몇 차례 더 개량을 거쳤습니다. 밀라노의 루이지 베제라는 보다 높은 압력으로 커피를 추출하면서도 한 잔씩 커피를 만들 수 있는 기기를 선보여 시장성을 인정받기도 했죠. 에스프레소는 단숨에 이탈리아의 명물로 떠올랐고, 많은 이들이 에스프레소를 아꼈지만 이탈리아에 주둔하던 미군들 입맛엔 맞지 않았습니다. 미군들에겐 차나 드립커피가 더 친숙했거든요.

에스프레소의 강렬한 맛에 화들짝 놀란 미군들은 경악스럽게도 에스프레소에 물을 부어 마시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그 꼴을 두 눈 뜨고 볼 수 없었던 이탈리아인들이 “미국인스럽다(Americano)” 라며 이 음료를 아메리카노라 부르기 시작했고, 그러거나 말거나 커피 맛만 좋았던 미국인들은 이 음료를 세계 각지에 수출까지 했으니. 이것이 바로 회사원 애착 음료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시작입니다.





화료하는 한 해 되세요.



보통 이 섹션엔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을 드립니다. 12월엔 자책하지 말고 한 해를 보내주자고 말씀드렸죠. 올해는 화료하는 한 해가 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마작에서 자신의 패가 승리 조건에 이르는 것을 화료한다고 합니다. 마작은 열 네 개의 패를 하나씩 쥐고 버리면서 원하는 그림을 만들어가는 게임인데요, 시작이 어떻든 내가 그려나가는 그림에 따라 얼마든 화료할 수 있고, 아무리 좋은 패가 들어와도 하나를 버리지 않으면 내 손 안에 두지 못합니다. 무엇을 얻느냐만큼 무엇을 버리느냐도 중요해서, 내가 버린 패에 따라 승패가 결정되기도 하지요. 그래서 잘 화료하기 위해선 하나를 얻고 하나를 버리는 모든 순간이 중요합니다. 모든 일에 시작이 있는 것처럼 끝이 있고, 시작만 중요한 것 같지도, 과정이나 끝이 유난히 더 중요한 것 같지도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1월부터 12월까지 차곡차곡 내 패를 잘 쌓아나가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면 혹시 또 모르죠, 칼디의 열매가 세계인의 음료가 되고, 가짜 커피의 나라가 커피 소비 강국이 되듯 올해도 나만의 모양으로 화료할지도. 절대 여러분을 마작의 세계로 끌어들이려고 드리는 말씀이 아님도 덧붙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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