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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64, 옴-

작성자 커피 리브레(ip:)

작성일 2024-01-23 09:5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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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MONTHLY LIBRE

February 2024





ISSUE #64

옴-







만트라




만트라는 짧은 음절로 이뤄진 일종의 주문입니다. 인도인들은 만트라를 읊으며 불안을 잠재우고, 자신을 정돈하곤 합니다. 표지의 옴은 인도에서 신성시되는 만트라인데요. 인도에서 유래한 종교들에서 반복되는 개념 – 시작과 끝이 없고, 끊임없이 변화하면서도 불변하는 것, 과거이자 현재이자 미래인 것, 그 모든 것 – 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꼭 인도인들만 만트라를 활용하는 건 아니라서, 누군가는 자신만의 단어로 만트라를 삼기도 하지요. 이렇게 말하니 제가 꼭 저만의 만트라를 소개해야 할 것 같지만, 딱히 저만의 단어를 정하지 못해서 제정신이 필요할 땐 옴 – 하고 소리 낼 뿐입니다. 그러다 보면 이 우주에서 제 걱정은 아주 작은 것으로 변하거든요.

이번 호는 인도, 그중에서도 아라쿠 커피에 대해 씁니다. 저 먼 땅 사람들의 번뇌와 고민을 제가 어떻게 헤아리겠냐마는 그들도 괴로울 때 저마다의 만타라를 읊으리라 믿으며 썼습니다. 이번 호도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당신 안의 신성을 존중합니다.



인도는 신의 나라. 힌두교에서 섬기는 신은 3억이 넘습니다. 이곳의 인사 ‘나마스떼’는 당신 안의 신성을 존중한다는 뜻이죠. 신성이란 거룩하고 고귀한 것입니다. 그러나 삶은 때때로 진창을 구릅니다. 이런 진창에도 신성이 있을까. 신의 은총마저 멀게 느껴질 때가 있죠. 아라쿠 커피는 바로 그런 곳에서 왔습니다.

마땅히 생계를 이을 수단은커녕, 전기도, 의료도, 교육도 없는 곳. 아이를 임신하면 산모가 죽고, 아이도 죽던 곳. 이 지역 사람 둘 중 하나는 글을 읽지 못하고, 또 둘 중 하나는 마실 물을 길러 샘을 찾아야 했던 곳. 2008년 한 해 동안 아라쿠의 미혼모 가장이 번 돈은 단돈 20달러에 불과했습니다. 3억의 신도 미처 살피지 못한 사각지대가 이곳에 있는 것 같았죠.

신이 돌보지 못하는 곳은 우리 스스로라도 돌봐야 합니다. 인도의 빈곤퇴치 및 사회개발 NGO 난디(Naandi)는 이곳에 유기농법 전문가 데이비드 호그를 영입해 커피 생산자들에게 경작법을 가르치는 한편, 조합에서 재배하는 커피에 유기농과 공정무역 인증을 받아 경쟁력을 확보했습니다. 난디는 지난 20여 년간 10만 명 이상이 커피를 통해 빈곤에서 벗어났다고 평가합니다.






커피가 증명한다.



그러나 아라쿠 커피가 훌륭한 까닭은 그런 데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제 아라쿠 커피의 최대 구매자 중 하나지만, 이 커피가 지역민에게 도움을 준다는 사실은 우리의 구매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우리가 아라쿠 커피를 구매하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아라쿠 커피가 세계 어느 지역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향미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인도 커피 재배는 보통 남서부 카르나타카에서 이뤄집니다. 아라쿠는 인도의 동부 지역에 있습니다. 전형적인 인도 커피와는 다른 환경에서 커피가 자라나지요. 이 때문인지 아라쿠 커피에서는 카다멈, 시나몬, 민트, 정향, 아니스 같은 이국적인 향신료 노트가 선명합니다. 

인도 커피가 맛이 있는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꼬치꼬치 묻자 젬스 오브 아라쿠(Gems of Araku)의 헤드 저지 쉐리 존스는 “커피가 증명한다.”고 일축했죠. 어떤 커피는 커핑 점수가 90점 중반에 이르기도 한다면서요.






오래된 의심



그러니까 인도 커피가 맛이 있을까? 라는 건 아주 오래된 의심입니다. 인도 커피는 가격이 저렴하니까, 인도 커피는 로부스타니까, 인도 커피는 복합성이 없으니까. 저마다의 물음에 힘을 실어주는 이유도 다양합니다. 인도 커피는, 예. 가격이 저렴하고, 로부스타 교잡종이 많고, 복합성보다는 단맛 바디감이 뛰어나지만 그게 인도 커피가 맛이 없다는 이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일례로 에스프레소의 본고장, 이탈리아에서는 매년 엄청난 양의 인도 커피를 구매하고 있습니다. 평소 이탈리안 에스프레소 커피를 애용하셨다면 이미 인도 커피를 즐기고 계셨던 거지요. 산미가 적고 단맛과 바디감이 좋은 인도 커피는 예로부터 이탈리아 에스프레소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왔습니다.

커피리브레 역시 창업할 때부터 인도 커피를 블렌드에 즐겨 사용하고 있습니다. 품질 좋은 인도 커피는 산미가 튀지 않으면서, 좋은 단맛과 바디감을 갖고 있어 블렌드에 들어가는 다른 커피들의 개성을 잘 이어주는 특징이 있습니다. 2023년 기준 6,000여 백(한 백 당 60kg)의 인도 스페셜티 커피를 수입했고, 올해도 있는 힘껏 인도 커피를 구매할 예정입니다.






부러진 대퇴골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는 문명의 첫 증거로 1만 5천 년 된 인간의 ‘부러졌다 다시 붙은 대퇴골’을 들었습니다. 부러진 대퇴골이 붙기까진 6주 정도 걸립니다. 그 시절에 대퇴골이 부러졌다는 건 먹을 것을 구하지도 못하고 맹수를 피하지도 못한 채 꼼짝없이 죽어야 한다는 것을 뜻했겠지요.

발굴된 대퇴골은 다른 어떤 인간이 뼈가 부러진 동료의 곁을 지키며 상처를 돌봐주고, 안전한 곳으로 동료를 데려가 다 회복할 때까지 지켜줬다는 증거입니다. 인류 문명은 그렇게 서로 돌봐주는 데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10여 년 전 우리는 젬스 오브 아라쿠 심사를 마치고 인근 여학교를 방문했습니다. 난디가 기부금으로 운영하는 학교인데, 학부모 중엔 이 지역 커피 생산자가 많습니다. 가정이 어려움에 처하면 여자아이들이 교육에서 배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참금에 팔려 가듯 결혼을 하기도 하지요. 아이들의 환대에 보답하고자 30명의 학비를 후원하던 것이, 지금은 430명으로 늘었습니다.

글을 모른다는 것, 점심 메뉴를 고를 때. 버스를 탈 때. 은행에 갈 때… 사소한 순간 하나하나 마음 졸이는 일이라던 누군가의 말. 우리는 인류 문명을 시작하는 그런 거창한 일은 할 수 없지만, 아이들이 마음 놓고 미래를 꿈꾸도록 도울 수는 있겠죠. 그런 마음으로 아라쿠 커피를 힘껏 구매하고, 고객에게 소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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